코딩하는 공익 반병현 CTO “AI 활용한 보급형 스마트팜, ‘상상텃밭’이 만든다”

[개기자의 개터뷰 #6]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 오세용 기자가 개발자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실제 프로덕트를 만드는 필드의 개발자를 소개합니다.

여섯 번째 인터뷰이로 반병현 상상텃밭 CTO를 만났습니다. 반병현 CTO가 속한 상상텃밭은 AI, IoT를 활용해 생산수율을 높이면서도 가격을 낮춘 보급형 스마트팜을 만드는 벤처기업입니다. 얼마 전 ‘업무 자동화 스크립트 짜주다가 국정원에 적발당한 썰’이 SNS에서 공유가 많이 됐는데요. 이 글의 저자이기도 한 반병현 CTO를 온라인으로 인터뷰했습니다. 코딩하는 공익 반병현 CTO를 소개합니다.

▲어색한 표정의 반병현 CTO. / 반병현 CTO 제공


– 자기소개를 해달라.

반갑다. 노동청에서 근무 중인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 반병현이다. 나이는 26살이고, 복무 이전에는 ‘농업회사법인 상상텃밭(주)’에서 CTO로 일하고 있었다.


– 일하고 있었다? 지금 상상텃밭은 안 하나? 못하는 건가?

복무 중에는 원칙적으로 다른 경제활동이 금지된다. 다행히 병무청에서 겸직허가를 해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보수를 받지는 못한다. 근로계약은 해지된 상태이므로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 알았다. 브런치 글 이야기부터 해보자. 브런치 글 ‘업무 자동화 스크립트 짜주다가 국정원에 적발당한 썰’이 인기를 끌었다. 현재 조회 수와 공유 수가 어떻게 되나?

인터뷰 답변을 드리는 오늘(2018년 11월 14일)이 딱 글을 올린 지 2주 차다. 현시점에서 조회 수는 26,807회, 공유는 639건이다. 재밌는 점은 조회 수의 60%가 글을 쓴 다음 날인 11월 2일에 발생한 것이다.

▲2만 6천 조회 수. / 반병현 CTO 제공


– 이정도 반응을 예상했나?

바이럴을 의도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단기간에 조회 수가 몰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단기간에 조회 수가 떡락할 줄도 몰랐다. 사람들이 내 브런치 매거진에 관심을 가질 때 두 번째 글을 올렸으면 좋았을걸… 마음이 급해서 처음 한 번에 두 편을 다 올린 것이 실수인 것 같다.

▲바로 떡락한 반 CTO 글. / 반병현 CTO 제공


– 브런치 글은 어떤 내용이었나?

근무지에 발령받고 엑셀 파일 2개를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 파일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필요한 내용인 것으로 보였고, 앞으로도 꾸준히 본인이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동으로 처리하는 스크립트를 만들어 담당공무원에게 전달했다.

이게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모니터링에 걸렸다. 비인가 소프트웨어 전송을 통한 공격행위로 오인돼 IP를 차단당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를 해제했다는 이야기다.

공익근무요원이 근무지에 배치받자마자 노동청 IP를 국가로부터 차단당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글로 쓰면 재밌을 것 같아 적어 봤다.


– 차단당했던 파이썬 프로그램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정말 간단한 프로그램이다. 엑셀 파일 2개를 읽어와 공통양식인지 체크하고, 양식이 같다면 두 파일을 시트 별로 각각 합쳐 새로운 엑셀 파일로 가공해 저장하는 프로그램이다.


– 그 브런치 글을 관련 공무원이 보지는 않았나? 봐도 상관없나?

당시 차단당한 IP를 풀어 준 것도 담당 공무원님이다. 이미 알고 계시는 일인데 뭐 좀 보면 어떠한가.


– 쩐다.


– 반 CTO 커리어가 궁금하다. 석사과정 조기 졸업이라 써 있던데, 어디서 뭘 전공했나? 논문도 썼나?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SBIE 연구실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주로 암세포를 연구하는 연구실이었고 나는 일종의 이단아였다.

Adversarial Training 기법을 이용해 심혈관 CT영상으로부터 관상동맥을 특이적으로 표지하는 시멘틱 세그멘테이션 인공지능을 만들었고, 이게 U-net이나 FCN 등 당시 유명한 Segmentation Model 보다 성능이 많이 뛰어났다.

안타깝게도 이걸로 저널논문은 못 냈다. 실제 환자 데이터인 데다가 외부 기업 소유다 보니 공개 관련돼서 절차 지연이 컸고,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졸업해서 스타트업으로 와 버렸다. 그러다 보니 AI 논문은 이것과 관련 없는 학회 2편뿐이고, 저널논문은 시스템생물학 분야가 한 편 있다.

인공지능 자체는 학부시절 ‘치즈케익스튜디오’라는 스타트업을 하면서 처음 공부했다.


– 전문연을 하지 않은 이런저런 욕심과 사정이 뭔가? 공개할 수 있나?

철이 들면서 한 번도 여유를 못 즐겨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재정비를 좀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대외적으로는 말 하고 다닌다.


– 그래서 여유를 즐기고 있나?

여유가 있기는 하다. 가족들이랑 같이 식사할 여유도 몇 년 만에 되찾았다. 그리고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저녁에 TV를 보면서 쉬기도 했다. 그런데 천성이 경쟁과 일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까지 막 여유롭지는 못하고 있다. 마냥 쉬고 있으면 스스로를 맘껏 무뎌지도록 방치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 결국 손에는 책이나 논문을 들고 있게 된다.


– 후회는 없나?

선택에 후회…는 월급날마다 한다. 공익 월급은 50만원이다. 뒤에 0 하나 더 찍힌 금액 제시받은 적도 있고, 거기서 앞자리가 6으로 바뀐 적도 있었는데.

여유가 뭐가 중요하냐 돈이 최고다. 흑흑.


– 힘내라. 난 내년부터 민방위다.

… 고맙다.


– 링크드인을 보니 상상텃밭 CTO라 돼 있다. 상상텃밭은 뭔가?

AI, IoT를 탑재해 생산수율을 극대화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최첨단 보급형 스마트팜을 만드는 벤처기업이다.

고교 동창들이 주축이 되어 창업했다.


– 스마트팜?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

농업은 기본적으로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자본수익률)가 매우 낮다. 과수농가는 땅 1평당 연순익 만원으로 잡는다. 4인 가족이 생활하려면 땅이 4천 평이나 필요하고, 매일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한다.

우리는 촉성재배기술을 도입해 작물이 자라는 속도를 최대 2배 높이고, 수경재배 시설을 n층으로 쌓아 경작량도 n배로 늘리는 설비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 시설을 일반 시설원예 가격에 보급하려 한다.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에 소형 재배기기를 납품한 바 있다.

10평 규모의 온실에서 1년간 R&D가 마무리됐고, 올겨울에 500평 규모로 이를 확장하는게 단기 목표다. 앞으로는 이 시설을 직접 사용하면서 BEP(Break-even point, 손익분기점)를 넘기고, 다음 투자라운드가 돌면 본격적으로 온실 면적을 넓히는 ‘심시티 체제’로 돌입하려 한다.

시장은 현재 정부주도로 강제로 저변이 넓어지고 있으나 많은 업체가 고전하고 있다. 농업인들이 스마트팜에 대해 가진 불신을 해소하고 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해 다른 업체들이 돈과 시간을 쏟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만든 저비용 스마트팜으로 직접 농사 짓는 게 이득이라 판단한다.


– 어쩌다 농업을 선택했나?

다이어트를 해 보겠다고 4일정도 채식을 했었다. 그 때 느낀 바가 많아 농업을 결정했다. 식량난 해소 등 거창한 목표는 아니고, 채식을 하다 보니 채소가 무척 비싼걸 알게 됐다. 편의성이 극대화된 신선한 야채를 저렴하게 공급하면 시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야채가 맛 없던 반 CTO. / 반병현 CTO 제공
▲반 CTO가 채식을 시작했던 1년 전 어느날. / 반병현 CTO 제공


– 고교 동창과 창업이라니. 몇 명인가? 각 구성원의 스킬이 다른가?

5명이 시작해 한 명이 이탈했고, 대학 동기 두 명을 각각 새로 영입해 현재 6인 체제다.

각 구성원의 전공과 전문성이 모두 다르다. 모두가 능력자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회사가 바로 멈춰버릴 수도 있을 거다.


– 고교 동창과 창업하면 장점이 뭔가?

장점은 서로 허물이 없다는 점이다. 근무 중에 더우면 다들 팬티만 입고 일해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단점은 서로 허물이 없다는 점이다. 근무 중에 더우면 다른 멤버가 팬티만 입고 일하는걸 봐야 된다.


– 못 들은 거로 하자.

그러자.


– 링크드인 프로필이 ‘행정, 재무, 법무, 경영, 연구, 개발 만능노예’라 돼 있다. 이걸 다 할 줄 아는 건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 학창시절 스타트업을 몇 번 말아먹었다. 말 그대로 폐업해서 뒷문으로 엑싯(exit)했다. 팀이 터지는 게 가시화되는 시점이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 쓴맛은 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더라.


– 쩐다. 그거 다 할 줄 알면 기분이 어떤가?

글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 그중 가장 잘하는 건 뭔가?

연구 아닐까? 혼자 연구해서 논문 쓸 능력은 있지만, 다른 건 다 전공자나 전문가보다 못한다.


– ‘법대로 합시다’ 책을 썼다고 하던데, 법에도 관심이 많나?

학부시절 변리사 시험을 쳤다. 2차에서 근소한 차이로 2번 낙방하고 ‘내 길은 이게 아닌가 보다’ 하고 단념했다. 그때 공부했던 것들이 아까워서 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이 외에도 작년 말에 ‘실전 민사소송법’이라는 책도 냈다. 올해에도 한 권 내려고 했었는데 복무 중에는 인세가 발생하는 저작물을 출판할 수 없다고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 근소한 차이면 다시 해 볼 생각은 없나?

없다. 이미 일반인이 평생 할 공부량의 2~3배는 달성했다고 본다. 더 공부할 생각 절대 없다.


– ‘카이스트 공부벌레들’도 공저인가? 원래 저술 활동에 관심이 많나?

‘카이스트 공부벌레들’은 카이스트 교내 문예공모전에 냈던 작품이 실린 것이다.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에는 방학 내내 쓴 한 권의 소설을 손으로 제본해서 방학숙제라고 제출했던 적도 있다. 까만 잉크가 중간에 바닥나서 뒷부분은 글자가 알록달록했다.

중2때 ‘조아라’라는 소설 플랫폼에서 무협소설을 연재한 적도 있다. 일일 조회 수 1위도 찍어 봤었는데 이제는 흑역사다.

매년 한 권씩 책을 출판하는 게 목표다.


– 무협소설 나중에 한 번 보겠다.


– 인공지능 전공이라 돼 있는데,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뭘 하고 싶은가?

글쎄 잘 모르겠다. 항상 답은 시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고객에게 중요하지 않다.


– 인공지능 전공자 입장에서 현 대한민국의 인공지능 분야 미래는 어떻게 느껴지나?

기술력만 평가하자면 국내 AI분야는 민간 주도가 생각보다 수준이 뛰어나다. 굳이 내가 어떤 평가를 붙이건 간에 대한민국의 인공지능기술은 앞으로도 눈부시게 발전할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술을 제품화하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경험을 개선하는 건 고민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생각도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

국산 농산물을 애용해 달라.


– 신토불이(身土不二)! 난 이제 간다.

잘 가라.